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스노 요이치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요이치(与一)란 '하나가 남는다'는 뜻으로, 요이치가 11번째 자식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. 야시마 전투에서의 일화로 유명하다. 야시마 전투에서 [[헤이케]]의 홍군은 배를 타고 상륙을 시도했지만, [[미나모토노 요시츠네]]가 이끄는 백군의 분전으로 인해 홍군은 상륙을 위해 타고 왔던 배까지 후퇴하게 된다. 이후 미나모토의 백군은 해변에 진을 치고, 헤이케의 홍군은 배를 타고 근해에 진을 친 상태에서 양군은 대치하게 된다. 이때 헤이케 측에서 방년의 소녀 한 명을 태운 배가 한 척 접근해 온다. 한껏 치장을 한 소녀는 장대를 하나 달고 있었는데, 그 장대 끝에는 홍군 사령관의 부채가 달려 있었다. [[정신승리|그리고 쏴서 맞출 수 있으면 맞춰보라는 듯 백군을 도발하기 시작했다.]] 요시츠네는 도발에 맞대응하기 위해 용맹으로 유명하던 부장인 하타케야마 시게타다[* 畠山重忠, 생몰 1164~1205. 특히 괴력으로 유명했다. 《겐페이 성쇠기》에서는 시게타다가 이치노타니의 기습 때 명마를 다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'''말을 들어올려 짊어지고 절벽을 뛰어내려갔다'''는 기록이 있다(우키요에 등에서 흔히 보이는 소재). 하타케야마는 훗날 요리토모 사후에 호조 가문과 다투다가 살해당했다.]에게 "저 부채를 활로 쏴 맞혀라. 맞히지 못하면 겐지의 망신이다"라고 했는데, 시게타다는 못 하겠다며 부하인 나스노 쥬로에게, 쥬로는 다시 부상을 이유로 자기 동생인 날아가는 새 3마리 중 최소한 2마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맞춘다는 명궁으로 알려진 나스노 요이치를 부른다. 나스노 요이치는 말을 타고 바다로 들어가 해풍이 몰아치는 가운데, 바다 위에서 흔들리는 배 위에 있는 소녀가 들고 있는 장대 위의 부채를 8단[* 1단은 6간, 1간은 6척, 1척은 10촌, 1촌은 3.03㎝다. 즉, 8단은 87.264m의 거리다.] 거리에서 '''나무 하치만 대보살'''(南無八幡大菩薩)[*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무가의 수호신 내지 [[군신]]으로 여겨졌던 하치만 신이 불교에 습합되면서 불교의 호칭인 대보살이라는 칭호를 얻어 '하치만 대보살'이라고 불리게 된 것.]을 외치며 쏘았는데 그게 맞았다. 이 광경을 보고 백군 뿐이 아니라 홍군에서도 감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고, 이를 축하하기 위해서인지 배부터 한명의 노(老)무사가 갑판으로 뛰어 올라와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. 이를 보며 양쪽 군 모두 웃음바다가 되었는데, 이를 본 --눈치 없는 새끼-- 요시츠네는 저 춤꾼도 쏘아 죽이라고 명령했으며 나스노 요이치는 그 명령을 받아 춤을 추고 있던 무사 또한 한 방에 맞춰 죽였다.[* 이를 보고 --홍군의 분위기가 싸해짐은 물론이고-- 백군에서도 저런 냉정한 짓을 하다니 분명히 후환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 돌았고 때문인지 이후 활을 쏜 나스노 요이치도, 그에게 쏠 것을 명령한 요시츠네도 몇 년 못 가 젊은 나이로 요절하게 된다.] 문서 상단의 [[우키요에]]는 이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.[* [[일본]]에서는 한국의 [[주몽]] 설화급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일화인지라 오래 전부터 그림의 소재가 되어왔고 그만큼 그린 사람도 많다. 위 그림은 요슈 치카노부(楊洲周延)의 작품이다.] 야시마 전투에서의 공적으로 [[미나모토노 요리토모]]에게 영토까지 하사받지만, 요시츠네의 실각 이후 불도에 입문한다. 이후 24세의 나이로 병사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